‘80년대 중반부터 방영된 드라마 ‘맥가이버’는 아직까지도 ‘다재다능함’의 대명사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佛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 시각)부터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인공지능(AI) 국제 정상회의를 홍보하기 위해 올린 자신의 딥페이크 영상으로도 다시 한 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자동차 분야에도 맥가이버처럼 다재다능한 ‘재주꾼’ 같은 브랜드가 있다. 바로 로터스다. 신차 개발할 때 특정 부분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갖춘 타 브랜드의 도움을 요청하는데, 로터스는 다양한 솔루션 경험을 가진 ‘1타강사’로 업계에서 유명하다.
오늘은 그 중에서 로터스가 개발에 참여했던 10개 차종을 소개하고자 한다.
①현대 제네시스(DH) 세단…전반적인 섀시 개발에 참여
지난 2014년, 현대자동차는 “경량 스포츠카로 유명한 로터스가 제네시스 섀시 개발에 참여했다”며 “로터스와 파트너십을 통해 제네시스의 주행 모드와 서스펜션 등 전반적인 섀시 개발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인 현대자동차가 로터스를 개발 파트너로 언급했다는 건, 그 만큼 로터스 엔지니어링에 대한 신뢰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현대차의 주행 완성도는 2세대 제네시스(DH) 출시를 기점으로 크게 변했다. ‘녹색지옥’으로 유명한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치열한 주행 테스트를 거치며, 탄탄한 주행 질감과 고속주행 안정감, 제동 성능, 핸들링 등 자동차의 ‘기본기’를 한껏 높인 결과다. 그 배경엔 모터스포츠 전문가 로터스의 ‘솔루션’이 있었다.
②기아 쏘울…유럽 버전 서스펜션 튜닝 작업
지금은 단종된 기아의 ‘박스카’ 쏘울과의 연결고리도 있다. 쏘울은 당시 미국에서 원조 격인 닛산 큐브를 몰아내며 선풍적인 인기를 끈 크로스오버 모델이다. 그러나 포근한 승차감을 좋아하는 미국 소비자와 탄탄한 주행 질감을 선호하는 유럽 소비자의 취향은 ‘정반대’였다. 그래서 기아는 당시 유럽 시장용 쏘울의 서스펜션 및 차체 튜닝 작업을 로터스에 의뢰해 상품성을 높였다.
③기아 크레도스의 승차감 및 핸들링 세팅
사실 기아와의 인연은 더 오래됐다. 스포츠카 엘란을 통해 로터스와 인연을 맺은 기아는 1990년대 중반, 현대 쏘나타 및 대우 프린스와 함께 중형 세단 ‘황금기’를 이끈 크레도스의 섀시 세팅을 로터스에 의뢰했다. 독특한 구조의 앞 서스펜션뿐 아니라 속도감응식 파워 스티어링,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 등이 로터스 작품이다. 이를 통해 기아는 크레도스의 광고 슬로건으로 ‘절묘한 핸들링’이란 문구를 앞세웠고, 실제 크레도스의 코너링과 핸들링 성능은 전작 콩코드 대비 한층 뛰어났다.
④로터스 오메가/로터스 칼튼…세상에서 가장 빠른 4도어 세단
1986년, 미국 제너럴 모터스(GM)는 그룹 로터스를 인수하며 자사의 다양한 신차 개발에 로터스의 노하우를 녹였다. 오펠 로터스 오메가가 대표적이다. 아마 BMW M5 같은 고성능 세단을 좋아하는 ‘환자’들은 이 차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로터스는 각각 오펠 오메가, 복스홀 칼튼으로 판매했던 중형 세단을 밑바탕 삼아 주행 성능을 한껏 높인 스페셜 버전을 만들었다.
가령, 직렬 6기통 3.0L 가솔린 엔진의 배기량을 3.6L로 키우고, 두 개의 가레트 T25 터빈을 심었다. 여기에 엔진 블록을 강화해 내구성을 높이고, 서스펜션 역시 성능 튜닝을 치르며 최고출력 382마력을 뿜어내는 고성능 세단을 빚어냈다. 생산은 로터스 영국 헤델 공장에서 진행했다.
외장은 영국의 레이싱 그린과 유사한 ‘임페리얼 그린' 한 가지 컬러로만 판매했는데, 앞바퀴 펜더에도 로터스 배지를 붙여 특별함을 더했다. 이외에, ZF 6단 수동기어와 후륜 LSD, 4피스톤 브레이크 캘리퍼 등 마니아들의 가슴 뛰게 할 다양한 아이템을 더해, BMW M5를 제치고 ‘동시대 가장 빠른 4도어 세단’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⑤쉐보레 콜벳 ZR-1 엔진을 설계한 로터스
비슷한 시기, 로터스는 쉐보레의 2도어 스포츠카 콜벳 개발에도 참여했다. 당시 쉐보레는 4세대 콜벳을 개발하며 직선 도로에서만 빠른 차가 아닌, 글로벌 스포츠카 시장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걸출한 성능을 원했다. 이에, 콜벳 라인업 중 가장 정점에 있는 ‘ZR-1’의 엔진 및 조향과 제동 시스템 설계를 로터스에 맡겼다.
로터스는 그동안 미제 머슬카의 상징과도 같은 푸시로드 방식의 재래식 8기통 엔진 대신, V8 5.7L DOHC LT5 380마력 엔진을 제작하며 투박했던 콜벳에 유럽 감성을 듬뿍 녹였다. 이 차의 프로젝트명으로 “King of the Hill(산길의 제왕)”을 사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⑥애스턴마틴 뱅퀴시 섀시도 로터스 작품
또한, 로터스는 같은 영국의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인 애스턴마틴의 신차 개발에도 참여했다. 2001년, 애스턴마틴이 선보인 1세대 뱅퀴시의 속살을 들추면 로터스가 개발한 카본 파이버 백본 섀시를 만날 수 있다. 덕분에 뱅퀴시는 거대한 V12 5.9L 가솔린 엔진을 얹고도 1.8톤 대의 비교적 가벼운 공차중량을 달성할 수 있었다.
⑦토요타 수프라 서스펜션 튜닝
1982년, 로터스는 토요타와 파트너십을 맺으며 2세대 토요타 수프라 개발을 도왔다. 구체적으로, 수프라의 사륜 독립 서스펜션을 설계하며 굽잇길 주행 성능뿐 아니라 편안한 승차감까지 양립시켰다. 토요타와 협업을 계기로, 당시 로터스는 노후된 에클라트를 대체하는 엑셀을 출시할 수 있었는데, 이 차에 수프라와 같은 5단 수동변속기와 드라이브 샤프트, 리어 디퍼렌셜, 도어 핸들 등을 탑재하며 전작 대비 차량 가격을 1,000유로 이상 낮췄다.
⑧닛산 GT-R 성능 향상을 위한 튜닝 작업
일본 브랜드와의 협업은 닛산의 대표 스포츠카 GT-R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07년 출시된 GT-R로, 당시 닛산은 신 모델의 전반적인 성능 향상을 위해 로터스 엔지니어링의 자문을 받았다. 그 결과 GT-R은 Cd 0.27의 공기저항계수를 달성하는 것은 물론,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포르쉐 911의 랩타임을 꺾으며 당대 최고의 스포츠카 반열에 올랐다.
⑨이스즈 피아자, “핸들링 바이 로터스”
로터스가 튜닝했단 사실을 자랑스럽게 붙인 차종도 있다. 바로 이스즈 피아자다. 이탈리아의 디자인 거장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스타일을 책임진 이스즈의 스포츠 쿠페로, 북미 시장엔 이스즈 임펄스란 이름으로 판매됐다. 1987년, 당시 피아자 라인업 중 로터스가 설계한 서스펜션이 적용된 고성능 버전이 있었는데, 측면에 ‘핸들링 바이 로터스’란 문구가 들어갔다.
⑩닷지 스피릿 R/T…”미국에서 가장 빠른 전륜구동차”
스피릿은 크라이슬러 산하 닷지 브랜드가 1989년부터 1995년까지 판매했던 중형 세단이다. 스피릿의 여러 라인업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냈던 R/T 버전의 심장은 로터스가 만들었다. 직렬 4기통 2.2L 가솔린 터보 엔진으로, 227마력의 최고출력은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인상적인 수치였다.
당시 스피릿 R/T는 “미국에서 만든 가장 빠른 세단”이란 광고 슬로건을 앞세웠다. 실제 미국의 자동차 전문지 <카앤드라이버>는 당대 ‘미국에서 가장 빠른 전륜구동차’라며 호평했고, <모터트렌드>는 ‘올해의 스포츠 세단’으로 스피릿 R/T를 선정했다.
이처럼 자동차 역사의 뒤안길을 살펴보면, 다양한 고성능 모델이 로터스의 솔루션을 받은 사례를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근래 로터스가 선보인 엘레트라와 에메야 등 차세대 순수 전기차의 주행 ‘기본기’가 대단히 뛰어나단 사실도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